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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봄날 강지혜 봄 내린 뜰 메주를 찬찬히 펼쳐 놓으시는 할머니 콤콤한 몸이 햇볕을 쬐는 동안 흙 배긴 항아리를 짚으로 말갛게 닦으신다 오금 한 번씩 펼 때마다 햇볕이 불룩 장독마다 햇살이 튄다 항아리 안에 푸른 하늘이 둥그렇게 먼저 들어 앉고 -볕이 잘 들어야 장맛이 좋은겨 할머니의 머리칼이 은실로 반짝인다 개집 속에 개밥 그릇도 볕 잘 드는 곳으로 나간다 햇볕을 따라 나간 누렁이 햇살에 버무려진 밥을 참 맛나게 먹는 따슨 바람과 햇발이 마당 그득 널린 날 *작품 감상 봄을 생각하면 마술 같다.거짓 같은데 그대로 참인 사물 현상을 보고 그 혜택 안에서 우리 모두 살아간다. 그 중 봄날의 햇살에는 과학의 설명만으로는 부족한 무량한 아름다움과 힘이 있다. 그 힘을 근원으로 대지에서 싹이 트고,웅크린 우리는 '..

전체보기 2020.05.20

납월 무청

납월 무청 강 지혜 추녀 밑에 매달린 풍경 이네요 납월에 쓸쓸히 겨울 바람을 맞고 있는 금방이라도 부서져 버릴 얼굴 흙 먼지 이는 바람도 온전히 당신의 몫이라고 온갖 서러움을 안으로,안으로 삼키다 벗겨내지 못한 삶의 때로 묵은 냄새만 납니다 자식은 어머니 가슴에서 젖내를 맡고 떠나가는 바람 풍경 안에 머물다가는 한 줌 바람 이겠지요 시래기 눈 속에 들어 차는 흙 알갱이로 서걱서걱,아직도 그 묵은 속을 새까맣게 파먹고 있는 이 철없는 자식을 겨우내 기다리며 찬 바람의 끝자락에서 헤지고 바랜 이파리 거죽만 남은 저 마른 시울 사방에서 연신 나를 부르는 소리 바람결에 섧히 울려 옵니다 저기,어머니가 꽃살 눈을 감은 채 쇤 머리칼을 흩날리며 처마 끝에서 손 흔드시네요 *** 납월 무청:음력 섣달 무우 시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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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아버지

흙과 아버지 강지혜 새벽 이슬에 젖어 오신 아버지 논 물고를 지키느라 한뎃잠에 덤불 머리 아침 나절 책가방을 꾸릴 쯤 아버지는 샘에서 낫을 가시며 또 하루를 꾸리셨다 공 들여 키운 벼 노랗게 영근 머리로 아버지께 고개를 숙였다 흙은 아버지 바람을 거스르지 않았다 심어 놓는대로 손길 주는대로 꼭 보답 해 주었다 흙에게서 배우며 깨달으며 일곱 자식들은 흙의 기운을 먹고 자랐다 어린 시절이 향수로 젖어 내리는 비 오는 아침 자글자글 논 수멍통에 모여 살던 미꾸라지 뛰놀던 논둑 밭둑 기억 속에서 생생히 펼쳐 진다 물이 고이면 수멍통을 틀어 막고 옆 논으로 물길을 내던 아버지 한숨, 웃음이 배어 있는 점촌은 아버지의 가슴이었다 하나 둘 대형 마트와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 하던 읍내 아버지의 손가락 끝 거뭇거뭇 배..

전체보기 2020.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