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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문학상 당선작 *불혹의 빗길*

강산들꽃 2019. 12. 4. 16:18

                   불혹의 빗길



 

봄 비 내린 날 밤

아버지가 술에 잔뜩 취해 들어 오셨다

비에 젖은 채 쓰러져 누운

아버지의 작업복을 벗겨 낸다

종일 비 스며 묵직한

또 한 겹의 하루를 개켜 놓는다

 

비바람에 걷어 올린 소맷단에서

흙살이 떨어진다

고단 했던 시간들이 진득하게 뭉쳐져 쏟아진다

거푸 뱉어내는 씁쓰름한 한숨 줄기,

잠꼬대로 하루 일을 꿈속에서 풀어 놓으신다

 

휘청거리는 날이 늘어만가는 봄날

행여 자식들 눈에 비쳐질까

몰래 속울음으로 감추고

비에 젖은 마음을 자꾸만 술로 여미신다

 

불혹의 빗길

아버지에겐 오직 자식이 꿈이다

자식 농사에 툭 불거진 팔목이

갈수록 삐걱이는 소리를 낸다

또 하루 삶의 돌턱을 건너 오신 아버지

막소주 두 병에 화한 열꽃을 재우고

봄날을 그리다 잠이 드셨다

 

머지않아 아버지의 가슴엔

봄꽃이 활짝 필 것이다

내일은 꼭

맑게 갠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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