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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소 시/강지혜

강산들꽃 2023. 4. 21. 19:54

 

       급식소

                                                           ★강지혜

 

 

 

밥 한 끼에 말 나눌 친구도 있었는데

밥 만큼이나 진한 훈김이 있었는데

코로나19 질병 번짐으로 급식소가 문을 닫았다

마음의 온기마저 사라졌다

내리막길 마지막 보루인 

따듯한 마음도 조금씩 식어만 가고

 

생활 보호사가 문 코에 놓고 간 도시락

밥덩이를 희멀건 동공에 밀어 넣으며

살아야 한다,차디찬 또 하루를 삼킨다

 

대신 할 수 없는 따스한 손길

한 솥밥 정감어린 눈길

추위를 말아 구부러진 잠을 청하며

냉골 같은 시간을 허연 입김으로 내뿜는다

 

절룩절룩,가슴치에 식판을 안고 

상장을 받아 든 아이처럼 환화게 웃던 박씨는 

지하도 어디 쯤 강소주에 발자국 소리만 입 안에 욱여 넣고 

사람들이 던지고 가는 무심한 말을 질겅거리고 있을 것이다

종이 상자 겹겹이 깔린 질긴 어둠을 삼키고 있을 것이다

형제와 매한가지인 급식소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 어디로 흩어져 또 하루를 잠재우고 있을까

 

볕 한 줌 들지 않는 쪽방

바튼 기침 소리로 또 하루를 뉘인다

 

동이 트면 희망도 새로이 움터 올 것이다

곧 새날이 밝아 올 것이다

 

작품해설: 

시 ‘급식소’는 코로나 때문에 문을 닫아버린 급식소를 바라보며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의 처지를 깊숙이 유추하는 작품이다. 가느다란 생명줄이었던 급식소조차 찾지 못하게 된 빈민들의 삶을 두루 헤아려보는 마음이 갸륵하다. 뿔뿔이 흩어져 각자 어렵사리 엄동설한을 견디고 있을 가난한 이들의 일상을 안타까워하면서 ‘곧 새날이 밝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그예 놓지 않는 시인의 마음이 애틋하다.

 

"'사랑해요' 인사 건네자 눈물…그 모습에 나도 울컥"

CBS노컷뉴스 주영민 기자입력 2023. 4. 28. 06:24
 
[배고픈 사회, 함께 우는 사람들④]
"배고픈 사람은 누구나 무료" 인천 서구 '나눔의 울타리'
매일 100여명 노숙인·장애인·노인 등에게 무료 점심 제공
'약하고 배고픈 사람 먼저' 그러나 같이 먹는 식사
정부 지원 없이 주로 일반인 기부로 운영
'나눔의 경험 자존감 높여' 노숙인 재활 고민 속에 무료급식소 탄생
편집자 주
아직도 따뜻한 밥 한 공기가 귀한 사람들이 있다. 무료급식소를 찾아가는 데 몇 시간을 들이는 사람들도 있다. 배고픈 사람들이다. 이들과 함께 우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 새벽부터 아침밥을 하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 '고맙다'는 한 마디에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다. CBS노컷뉴스는 올 한해 배고픈 사회 곳곳을 찾아다니며 온정을 나누는 밥 한끼를 소개한다.
26일 인천 서구 석남동 무료급식소인 '나눔의 울타리' 앞에서 주민들이 점심식사를 하는 모습. 광명의집 제공
▶ 글 싣는 순서
①새벽엔 국자 들고, 낮에는 공구함…19년째 '따뜻한 이중생활'
②"밥이 생명"…굶주린 노숙인들의 '한끼 원정'
③배고픈 이들에게 '천원의 한끼'…행복 나누는 '기운차림식당'
④"'사랑해요' 인사 건네자 눈물…그 모습에 나도 울컥"
(계속)

지난 25일 인천 서구 석남동 무료급식소 '나눔의 울타리'에는 80대 노모가 있었다. 출소 후 연락이 끊긴 60대 아들을 기다리 것이다. 그는 정해진 일과처럼 이곳에서 밥을 먹고 아들을 기다린다. 어떤 사정이었는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들은 알콜중독으로 여러 차례 병원을 오가다 결국 범죄를 저질렀다. 최근 출소했지만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술을 끊게 하려고 병원을 보낸 게 서운했던 건지, 출소 후 정신차리고 새 삶을 살고 있는지 어머니는 아들의 행방이 궁금하지만 알 수가 없다. 오늘도 노모는 아들이 배고파서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아들과 함께 밥을 먹었던 '나눔의 울타리'를 찾는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문을 여는 인천시 서구 석남동의 무료 급식소 '나눔의 울타리'에는 다양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온다. 

노숙인에게 무료 점심 제공…지금은 주민에게 열린 무료 '마을 식당'


'나눔의 울타리'는 노숙인재활시설 '광명의 집'이 운영하는 곳이다. 2009년 4월 서구 가정동 콜롬비아공원에 있던 노숙인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했던 게 시작이었다.

콜롬비아 공원은 남미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6·25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해 전사자 143명, 실종자 69명, 부상자 567명의 피해를 입은 콜롬비아군을 추모하기 위해 인천시가 1975년에 지은 곳이었다. 많은 노숙인들이 지내던 이곳은 가정동 일대가 재개발되면서 2018년 연희동 경명공원으로 옮겨졌다.

콜롬비아공원이 재개발되자 '나눔의 울타리'는 2013년 더 원도심인 석남동으로 장소를 옮겼다. 이후 노숙인과 홀몸노인, 장애인 등 다양한 사정을 가진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한 마디로 마을식당이다.

25일 인천 서구 '나눔의 울타리' 무료급식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급식소를 찾아 온 어르신들에게 배식을 하고 있다. 광명의집 제공
 

'약하고 배고픈 사람 먼저' 그러나 같이 먹는 식사


나눔의 울타리는 하루에 두 번 식사를 제공한다. 오전 10시경 주변 학교에서 남은 급식을 모아 선착순으로 나눠준다. 도시락통만 가져오면 누구나 음식을 받아갈 수 있다. 나눔의 울타리를 운영하는 광명의집 이화용(65) 사무장은 "급식소를 찾은 사람들에게 오전 10시에 나눠주는 밥은 저녁식사용"이라면서 "직접 밥을 짓기에 몸이 불편하거나 먹을 게 없는 분들이 배고플 때 요기를 하기 위해 먹는 음식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12시에는 본격적으로 점심식사를 나눠준다. 하루 평균 100여명이 몰리는 점심식사지만 절대 줄을 서지 않는다. 마치 식당처럼 자원봉사자들이 급식소를 찾은 주민들의 자리에 식판을 가져다 준다. 취향에 따라 특정 반찬을 더 주기도 하고 평소 밥을 많이 먹는 이들을 위해 따로 밥 한 공기를 더 주기도 한다. 지난 25일에는 쌀밥과 고등어무조림, 봄나물무침, 김치, 떡, 미역국이 식판에 올랐다. 26일에는 닭볶음탕에 두부조림, 김치, 방울토마토, 콩나무김칫국이 제공됐다.

여느 급식소처럼 방문자들이 밥을 스스로 가져다 먹는 게 아닌 가져다 주기 때문에 이야기가 잘 통하는 주민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먹기도 하고, 혼자 먹기 편한 사람은 혼자 따로 먹는다. 가끔 부천이나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노숙인도 볼 수 있다.

밥 먹는 순위도 독특하다. 선착순도 아니고 힘센 사람도 아니다. 여성이나 장애인 등 가장 나약하거나 가장 오래 굶은 사람에게 먼저 식판이 돌아간다. 그렇다고 먼저 식판을 받은 이들이 먼저 밥을 먹지 않는다. 이웃들이 다같이 밥을 먹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식사가 시작된다.

식사를 하기 위해 모였지만 식사 만이 목적이 아니다. 밤새 안녕했는지 새로 급식소를 찾아온 이가 없는지 서로 돌아보고 서로 격려한다. 차마 자녀들에게 못한 이야기도 '급식 친구'에게는 스스럼없이 주고 받는다. 한 마디로 '이웃사촌'이다.

나눔의 울타리에 붙어 있는 안내문. 돌봄 사각지대 등 다양한 안내문들이 부착돼 있다. 주영민 기자
 

정부 지원 없이 주로 일반인 기부로 운영


'나눔의 울타리'는 다른 복지기관들처럼 정부 보조금이나 후원금, 기부금 등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급식소에서 쓰이는 식자재 비용 등 각종 운영비는 기본적으로 이곳을 운영하는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사비를 털어 마련한다. 여기에 간간이 들어오는 식자재 후원이나 기부 등으로 겨우 버티고 있다.

지난해 봄부터 이곳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황명자(63·여)씨는 보육교사였다. 평소 다문화 가정 자녀들을 가르치는 등 봉사활동을 하던 그는 우연히 이곳을 접한 이후 거의 매일 봉사활동을 한다. 황씨는 "겉으로 보면 이곳을 찾는 이들이 자원봉사자에게 관심도 갖지 않을 것 같지만 막상 개인사정으로 하루만 나오지 않아도 무슨 일 있었냐고 안부를 묻고 걱정을 할 정도로 대화와 소통이 간절한 곳"이라며 "어르신들에게 '어머니 사랑해요'라는 말 한 마디에도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울컥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자원봉사자(40대·여)도 "이곳에 있는 모든 자원봉사자들이 넉넉해서 자기 돈 써가며 일하는 게 아니다"라며 "저마다 급식소를 찾는 이들이 자신의 부모같아서, 혹은 나의 미래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아서, 소외된 이웃을 위해서 모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무료급식소를 운영하면서 가장 어려운 건 언제든 끊길 수 있는 식재료와 활동경비라고 말했다. 봄에는 그나마 날씨가 춥지 않아 무료급식소 앞에 놓인 야외테이블에서 식사할 수 없지만 장마나 눈이 올 때, 한겨울 등 야외식사가 어려울 때는 30㎡ 남짓한 급식소 안에 많은 인원이 다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는 천막을 쳐야 하는 데 이 비용을 대기도 어려웠다.

최근에는 유류비와 식자재값이 오르면서 인근 학교에서 가져오는 남은 급식을 받아오는 것도 버겁다. 남은 급식을 제공하는 학교 한 곳이라도 가지 않으면 오늘 석남동 주민들의 저녁이 사라진다는 생각으로 악착같이 간다고 이화용 사무장은 설명했다.

이화용 광명의 집 사무장 겸 나눔의 울타리 운영자. 주영민 기자
 

기업 사장에서 노숙인시설 운영자로180도 바뀐 삶


나눔의 울타리를 운영하는 '광명의집'은 1998년 겨울 콜롬비아공원에서 노숙인 7명이 눈 속에서 잠을 잔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화용 사무장이 자신의 사비를 털어 반지하 원룸에 그들과 생활하면서 시작됐다.

인근 공단에서 사업체를 운영하던 사장이었던 그는 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협력사들이 중국으로 옮겨가면서 사업을 정리하고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 우연히 노숙인과 함께 살면서 자연스럽게 노숙인 생활시설을 짓게 됐다. 애초 사회복지에 관심이 없었지만 7명의 노숙인과 생활하면서 자연스럽게 사회복지에 관심을 가졌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노숙인 생활시설을 운영하려 했지만 비용이 없어 고민하던 어느날 일면식 없는 목사가 찾아와 지금의 '광명의 집'을 지어줬다고 설명했다. 이후 이 사무장은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은행에서 3000만원을 대출 받아 줬다고 한다. 당시 큰 돈을 빌린 건 맞지만 3000만원에 2층 건물을 짓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지금 이곳은 알코올의존자, 장애인, 노숙인 등이 인천시내 구청이나 경찰서, 종교단체 등을 통해 입소해 생활하는 비영리 사회복지시설로 운영된다.

2009년 4월 광명의집 노숙인들이 인천 서구 콜롬비아공원에서 노숙인과 마을 주민에게 무료 점심식사를 배식하는 모습. 광명의집 제공

'나눔의 경험 자존감 높여' 노숙인 재활 고민 속에 무료급식소 탄생


이 사무장이 '나눔의 울타리'를 운영하게 된 건 노숙인들의 자활을 위해서였다. 콜롬비아공원에서 무료 급식을 받던 노숙인들이 반대로 노숙인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경험을 하게 해 자존감을 높여주자는 취지였다. 지금도 나눔의 울타리에는 3명의 노숙인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이 사무장은 "한 때 너무 힘들어서 무료급식소 운영을 중단할까 고민한다고 말을 하니 함께 봉사활동 하던 노숙인들이 절대 운영을 멈추면 안된다고 간곡히 얘기했다"며 "찾아오는 이와 준비하는 이 모두에게 무료급식소는 중요한 삶의 이유를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봉사가 정부의 지원이나 소수 부자들의 후원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는 것이 더욱 놀랍다. 비영리 시설이어서 이곳에 후원해도 세금 공제도 안된다. 순수 기부금으로 운영하는데도 십시일반의 정성과 봉사자들의 헌신이 모여 지금까지 이어졌다. 서구 석남동에서는 나이가 많든, 장애인이든, 노숙인이든 상관없이 누구나 밥을 먹을 먹을 수 있는 곳이 15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 사무장은 "처음 노숙인들과 생활한 이후 완벽한 사람이 어려운 이를 이해하고 돕는 게 아닌 어려운 이가 더 어려운 이를 이해하고 돕는다는 생각이 든다"고 회고했다. 그의 소원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광명의집과 나눔의 울타리가 꾸준히 운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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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주영민 기자 ymchu@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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