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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산맥

강산들꽃 2021. 5. 7. 23:52

―······아침을 여는 시급식소 외 1편/ 강지혜 시인

시산맥추천 0조회 2921.05.07 00:57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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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식소

 

 

밥 한 끼에 말 나눌 친구도 있었는데

밥만큼이나 진한 훈김이 있었는데

코로나19 질병 번짐으로 급식소가 문을 닫았다

마음의 온기마저 사라졌다

내리막길 마지막 보루인

따듯한 마음도 조금씩 식어만 가고

 

생활 보호사가 문 코에 놓고 간 도시락

밥덩이를 희멀건 동공에 밀어 넣으며

살아야 한다, 차디찬 또 하루를 삼킨다

 

대신 할 수 없는 따스한 손길

한 솥밥 정감어린 눈길

추위를 말아 구부러진 잠을 청하며

냉골 같은 시간을 허연 입김으로 내뿜는다

 

가슴치에 식판을 안고

상장을 받아 든 아이처럼 환하게 웃던 박씨는

지하도 어디 쯤 강소주에 발자국 소리만 입 안에 우겨 넣고

사람들이 던지고 가는 무심한 말을 질겅거리고 있을 것이다

종이 상자 겹겹이 깔린 질긴 어둠을 삼키고 있을 것이다

형제와 매한가지인 급식소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다 어디로 흩어져 또 하루를 잠재우고 있을까?

 

볕 한 줌 들지 않는 쪽방

바튼 기침 소리로 또 하루를 뉘인다

 

동이 트면 희망도 새로이 움터 올 것이다

곧 새날이 밝아 올 것이다

 

 

                          자루

 

해 질 녘, 흙길에 자루가 걸어간다

 

산모퉁이를 돌아

자식 걱정까지 짊어진 어머니가 힘겹게 걸어가신다

고부라진 등에 숫제 자루를 업고 바튼 숨을 내쉬며

마을 어귀로 들어서신다

굽은 키보다 곱절은 큰 자루에 가려 어머니 발꿈치만 보인다

자식들 거둬 먹일 도토리, 밤, 살가운 정도 가득

도회지로 일찍 돈 벌러 나간 아들

젖배를 곯은 탓인지 고봉밥을 먹고도

늘상 배고프다 칭얼대던 막내아들이 오기로 한 날

해거름에 발걸음이 사뭇 빨라지신다

 

오랜만에 뵌 어머니

뒷모습에 그만 울컥 해진다

걸어가는 자루가 어머니다

덤불 머리에 어머니가 그 자루다

어머니의 고달픈 하루가 불룩 하다

막걸리 한 사발로 허기 때우시고

수북이 자식들 보고픔을 채우셨을 어머니

아니, 그리움 따윈 아예 버리셨을 어머니

당신 평생 가난이 업이다, 자식들을 이고 지고 업고

산밭 일로 여섯 자식을 억척스럽게 키우신 어머니

 

꽃다운 시절 그 알곡 같던 날도

한 자루 담겨져 있겠지요

 

오늘도 보물인 양 자루를 업고

흙길을 걸어가고 계실 것이다

빈 쭉정이 어깨 땅에 닿을 듯 엎드리고

갈라진 손으로 또 하루를 멍석에 펼쳐 놓고 계실 것이다

볏짚 같은 눈물을 삭히시며

 

호박나물 광주리에

어머니 눈물도 꾸득꾸득 말라가고 있을 것이다

오지 않는 자식들을 기다리시며.



강지혜 시인

 

충북 진천군 출생. 경기문협 제1기수료. http://강지혜.시인.com

한국작가시부문등단. <머니투데이>신춘당선 <시인의 시선> 사진시부문.

현)청암문학 화성시지부장. DSB 한국문학방송작가회. 서울디카시인협회

첫시집 <별을사랑한죄> 동시집 <별나무>. 전자집, 유튜브 등 공저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