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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덩이

강산들꽃 2021. 4. 21. 07:29

                                    웅덩이

                                                  강지혜

 

 

어머니 가슴에 깊은 웅덩이 하나 파여 있다

일곱 자식을 햇발에 엮어보내고 나서야 넘쳐흐르던 물이 가라앉고

날 슬은 눈동자로 서늘히 발목을 적시며 건너 가신다

 

나는 늘 웅덩이 속에서 흰 머리칼 사이를 헤집고 드나들었다

해가 갈수록 웅덩이는 짓무르고

푹푹 곪은 삶의 냄새가 바람결에 묻어났다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갑북하다고, 늘 꿋꿋해야 한다고

쪽잠으로 지켜 주시던 어머니 여든 고개 넘으실 때

가슴 한복판을 전부 도려내고 싶은 웅덩이에 끝내 잠기셨다

 

별꽃같은 시절 내리 자식을 낳으시며

시나브로 파이기 시작한 웅덩이

이제야 그 눈물이 보인다

허우적 거리는 딸이 얼마나 아픈 웅덩이 였던가

당신이 죄인이다, 웅덩이 속에 갇혀 얼마나 눈물 훔치셨을까

 

저절로 녹아 깊어진 그 아픔

메말라 뿌리마저 드러난 그 눈물 웅덩이

오십이 되어서야 보인다

 

사진 속 어머니 생전에 좋아하셨던 꽃

향기만이 그 웅덩이를 덮는다

 

 

***- 시 심사평 : 문순태 시인, 소설가

 

  

- (재)생오지문예창작촌 이사장      - (사)무등문예창작연구회 이사장
 - 제 2대 광주.전남연구원 이사장   -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 전남일보 편집국장                - 순천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 제 7회 채만식문학상              - 제 23회 요산문학상
 - 제 28회 이상문학상 특별상       - 제 13회 광주문화예술상 문학상
 - 소설문학 작품상            
 - 작품집에 장편대하소설 타오르는 강, 징소리 외 다수

 

 

압축미와 이미지 잘 살린 <웅덩이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올라온 6명의 작품 19편은 완성도 면에서 수준이 비슷해서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19편을 다 읽고 나서 가슴에 남은 작품은 강지혜의 <웅덩이>와 황세아의 <외가리>였다. 두 작품 중에서 <웅덩이>가 언어선택과 시적 이미지를 잘 살려내고 있다.

  강지혜의 <웅덩이>는 초보자들이 범하기 쉬운 서술중심 표현에 매몰되지 않고 탁월한 언어선택으로 압축미를 보여주고 있다. 어머니의 삶을 개인적인 정서를 통해 빛나는 감각으로 섬세하게 표현한 점이 돋보였다. 특히 웅덩이로 상징 되는 어머니의 삶을 은유적으로 완성도 높게 표현하는 등 시문학 미학에 충실함이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