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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시

강산들꽃 2021. 4. 5. 01:23

                      봄비

 

 

봄비 내린 날 밤

아버지가 잔뜩 술에 취해 들어 오셨다

비에 젖은 채 쓰러져 누운

아버지의 작업복을 벗겨 낸다

종일 비 스며 묵직한

또 한 겹의 하루를 개켜 놓는다

 

비바람에 걷어 올린 소맷단에서 흙살이 떨어진다

고단했던 시간들이 진득하게 뭉쳐져 쏟아진다

거푸 뱉어내는 씁쓰름한 한숨 줄기

잠꼬대로 하루 일을 꿈속에서 풀어 놓으신다

 

휘청거리는 봄날이 늘어만 가는 봄날

행여 자식들 눈에 비쳐질까

몰래 속울음으로 감추고

비에 젖은 마음을 자꾸만 술로 여미신다

 

오십줄의 빗길

아버지에겐 오직 자식이 꿈이다

자식 농사에 툭 불거진 힘줄이

갈수록 녹슨 소리를 낸다

또 하루 삶의 돌턱을 건너 오신 아버지

막소주 두 병에 화한 열꽃을 재우고

봄날을 그리다 잠이 드셨다

 

머지않아 아버지의 가슴엔

봄꽃이 활짝 필 것이다

내일은 꼭 맑게 갠 하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봄 내린 뜰

메주를 찬찬히 펼쳐 놓으시는 할머니

콤콤한 몸이 햇볕을 쬐는 동안

흙 배긴 항아리를

짚으로 말갛게 닦으신다

오금 한 번씩 펼 때마다

햇볕이 불룩

장독마다 햇살이 튄다

항아리 안에 푸른 하늘이

둥그렇게 먼저 들어 앉고

 

 -볕이 잘 들어야 장맛이 좋은겨-

할머니의 머리칼이 은실로 반짝인다

 

개집 속에 개밥 그릇도

볕 잘 드는 곳으로 나간다

햇볕을 따라 나간 누렁이

햇살에 버무려진 밥을

참 맛나게 먹는

 

따슨 바람과 햇발이

마당 그득 널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