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제7회삼행시문학상 금상

강산들꽃 2022. 6. 13. 20:43

제7회 삼행시문학상 원고를 편집해서 표지와 함께 탑재합니다.

제작은 양장본(하드카버)이며 내지도 칼라입니다.

 

 

 

참된 나를 찾아서 외1편/강산들꽃(강지혜) 금상작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했던가

꽃잎 다 떨군 나무가 실한 열매를 맺었다

겉치레 다 버리면 나도 실한 열매 맺을 수 있으려나

 

 

/강산들꽃(강지혜)

 

바람 수런대는 봄날

지천으로 만발한 개나리 웃음 소리

내 마음에도 노오란 봄물이 들었네

 

대상 수상평/열쇠/이동주

 

 

 

비틀리고 꺾여야만 열리는 세계

우직하게 밀고 나갈수록 저항하는 경계

너 한번이라도 몸 뒤틀리도록 화해한 적 있는가

- 이동주(뿌리깊은 나무) 삼행시, 『열쇠』 전문

 

비유는 표현하고자 하는 것(원관념)과 비유하는 사물(보조 관념)의 상관관계가 성립된다. 즉 원관념과 보조 관념 사이에 유추가 이루어질 수 있는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 비유는 표현의 구체성, 직접성, 선명성을 높이는 수단이 된다. 비유의 표현 중에서 ‘~같은, `처럼’이라는 접미사가 있다. 이 조사를 쓰는 문장을 직유가 가미된 문장이라고 한다. 직유의 표현이 발전하면 무엇일까? 바로 은유이다. 직유가 유사한 두 사물을 비유한다면 은유는 유사하지 않은 두 사물을 동일시하게 된다. 따라서 시에서 직유보다 은유가 더 소중한 이유는 ‘감춤의 미학’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은유는 직유에 비해 신비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숨길수록 매력이 더해지는 원리인 것이다. 

 

<꽃 같은 여인>이라는 말에서 생각해 보면 ‘여인’이 원관념이고 ‘꽃’은 보조관념이다. 보조관념인 꽃에 빗대면 여인의 이미지가 감각적으로 와 닿는다. 즉 시창작할 때 쉽게 오류로 쓰는 <아름다운 여인>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시각적 이미지로 구체화하면서 시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 그리고 상징은 어느 대상을 다른 대상으로 표시하거나, 본래의 의미 외에 다른 의미로 나타내는 표현 기법이다. 그래서 상징은 의미의 암시성과 다의성을 지닌다. 비유는 원관념과 보조 관념이 1대 1의 유추적 관계를 보이지만, 상징은 1대 다수의 다의적 관계이다. 이렇듯 비유와 상징은 근본적으로 차이를 가지고 있다. 비유는 그 구조가 아무리 복잡해도 원관념에 해당하는 뜻을 파악할 수 있으나, 상징은 원칙적으로 그것이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솜이불을 덮고 선 겨울 나무’라는 표현에서 솜이불의 원관념은 ‘눈[雪]’이 분명하므로 이것은 비유적 표현이다. 하지만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의 ‘님’은 연인이나 조국에 한정되지 않고,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형도 시인의 시, <빈 집>을 보자.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에서 마지막 전 행에서 직유의 표현이 있는 문장인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라는 문장을 은유로 바꾸면, ‘나 장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로 표현될 것이다. 직유의 표현이 좋은지 은유의 표현이 좋은지의 선택지는 화자의 몫이다. 이제 마지막 연의 ‘빈 집’이란 무엇을 상징하는 말인가? 정답은 ‘사랑을 잃은 마음’이다. 즉 가족들이 사랑하고 행복했다가 슬프기도했던 따뜻한 공간이다. 하지만 이제는 비어있는 집을 표현한 내용이다. 이렇게 원관념은 나타내지 않고 ‘빈 집’이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보조관념만 나타내는 것을 상징(symbol)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원관념이 생략된 은유법과 같으며 직유와 은유는 두 사물을 비교하고 비교되는 두 사물이 시에 나타나지만 상징은 원관념을 감추어 시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렇게 직유에서 은유로, 은유에서 상징으로 나아가면서 감춤은 깊어진다. 그래서 임보 시인은 상징을 ‘고급 위장술’이라고 표현한다. 

 

조금 더 풀이를 해보자, 김수영의 시, <풀>에서,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뻘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도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시에서 ‘풀’이 눕고 또 울다가 눕는 것은 어두운 현실에서 살아야만 하는 민중의 삶을 비유한다. 하지만 흐린 날 비를 몰아오는 ‘바람’은 지배세력의 횡포이며 결국은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강인한 민중의 생명력을 ‘풀’의 이미지를 매개로 노래한다. 그러니까 김수영의 시, ‘풀’은 ‘풀과 바람’만 겉으로 드러나고 원관념인 ‘민중’이 생략된 감춘 구조인 것이다. 즉 은유적 표현이다. 이렇게 은유는 원관념이 하나이지만 ‘빈 집’의 상징적 표현은 ‘다수의 원관념’을 갖는다. 따라서 상징은 다수의 원관념을 갖게 되어 추정이 어렵고 모호하다. 그만틈 상징은 풍부한 상상력을 요구한다. 

 

제7회 삼행시문학상에서 대상작으로 뿌리깊은 나무님의 <열쇠>를 선정한다. 이 시는 철저한 위장술을 발휘하여 상징을 표현한다. 원관념은 ‘화해’이다. 확대해석해 보면 세계정세로 볼 때, 미국과 중국의 갈등 그리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모두 서로가 화해하지 못하고 일어난 전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개인으로 확대하면 개인 간의 갈등과 반목 역시 그 알량한 자존심을 꺾지 못하여 일어난 일이고 결국 인간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서로 싸울 상황에서 누군가 열쇠역할을 한다면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예언자적 시야가 커 보인다. 화자는 세상을 살아갈 때 열쇠라는 보조관념을 통해 원관념을 다의적으로 유추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열쇠라는 보조관념만을 부각시켜 원관념을 감추어 시에 나타나지 않는다. ‘비틀리고 꺾여야만 열리는 세계’는 잘못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양측 중 한 쪽에서 비틀리지 않고는 화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직하게 밀고 나갈수록 저항하는 경계’에서 화해보다는 지배를 통한 압제를 하게 되면 당하는 민중은 화해를 포기하고 경계를 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서로 반목의 역사가 세계의 역사인 것이다. 이럴 때 화자는 ‘너 한번이라도 몸 뒤틀리도록 화해한 적이 있는가’라고 화두를 던진다. 양측의 반성을 자각하게 하고 세상을 온전히 살기위해서는 지배세력과 민중의 화해가 가장 중요하다는 고도의 상징적 표현으로 마무리 한다. 좋은 시를 통해 제7회 삼행시문학상이 더욱 값지게 느껴진다. 수상자가 목회자여서 그런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는 말이 연상된다. 

 

참고로 현대시는 직유보다 좀 더 여유가 있는 은유를 많이 쓰고 있다. 시 창작 시에는 무엇보다 남들이 사용하지 않는 참신한 비유를 쓰는 것이 중요하다. 상징도 마찬가지로 남들이 많이 사용하는 진부한 상징을 사용하면, 자칫 모방시로 보일 수 있어 삼가하는 것이 좋다. 참여자 와 수상자 모두의 건승을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