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산골에 어린이도서관 만든 '원자력 아버지' 장인순박사님]

강산들꽃 2021. 5. 26. 17:53

[꿈을 캐는 마당]세종시 전의면 소재 어린이도서관

박사님 존경합니다!

"교육이 곧 국력… 여러분도 세계 바꿀 인재 될 수 있어요"

 “가장 좋아하는 책상에서 오래오래 공부하다 가세요.” 지난 20일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과 명예기자들이 태극모양 책상에 둘러앉았다. /세종=김종연 기자

세종특별시 전의면 꼬불꼬불한 숲길 끝에 어린이를 위한 작은 공간, '전의 마을 도서관'이 지난 5일 개관했다. 이곳을 마련한 건 '한국 원자력의 아버지'로 불리는 장인순(81) 전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장. 사재(私財) 5000만 원을 털어 책 9000권을 들였다. 1년 365일 24시간 누구나 방문할 수 있지만 그가 가장 보고 싶은 손님은 어린이다. 별·달·자동차 모양의 책상과 귀여운 의자, 책을 읽다 지치면 누워 쉴 수 있는 소파까지 준비하고 아이들을 기다린다. 지난 20일 이 산골 도서관에 어린이조선일보 명예기자 나강민(세종 미르초 4) 군과 윤예슬(충남 아산초 4)·장지윤(충남 천안 희망초 3) 양이 방문했다. 장 전 원장이 기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우리나라서도 일론 머스크 나올 수 있어

장 전 원장은 도서관 입구의 '왜' '와이(Why)'라는 글자 앞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인류 역사는 '왜?'라는 물음이 이끌어 왔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인간은 유일하게 질문을 하는 존재거든. 사람이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모른다'는 거야. 모르면 질문을 하게 돼. 질문이 역사를 만들고, 역사를 적은 게 책이지. 인간이 쓴 책이 1억6000만 권이야. 귀중한 정보가 다 담겨 있어." 그렇게 인터뷰가 시작됐다.

Q. 도서관을 만든 이유가 뭔가요?(강민)

"조그만 섬에서 자랐지. 그땐 집이 가난해서 몽당연필에 침을 발라가면서 공부했어. 전깃불도 안 들어왔고. 그때를 떠올리면서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했어. 전 세계 40국 넘게 돌아다니면서 보니 자원이 많은데 거지같이 사는 나라도 있고, 자원이 없는데도 잘사는 나라가 있어. 바로 '교육' 차이였어. 여러분 중에도 일론 머스크, 아인슈타인이 나오지 말란 법 없지. 지윤 학생이 훌륭한 퀴리 부인 같은 과학자가 될 수도 있잖아."

Q. 어떻게 과학을 공부하게 됐나요?(예슬)

"원래 수학자가 되고 싶었어. 인간은 유한(有限)한 삶을 살지만, 수학을 통해 무한(無限)을 다룰 수 있거든. 근데 고등학교 선생님이 가난한 사람은 (순수 학문인) 수학을 하면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미국에서 불소화학을 공부했어. 불소화학은 원자력을 만들 때 꼭 필요한데, 그때 한국에는 이걸 연구한 사람이 없었어. 작은 힘이지만 조국에 기여했기 때문에 화학 공부한 걸 후회하지 않아. 그래도 다시 태어나면 꼭 수학을 공부하고 싶어."


많은 어린이가 공부하고 쉬면서 오래 머물다가 돌아갔으면
시간은 '자산' 소중히 여겨야 매일 일기 쓰면서 하루 돌아보길

 ①(왼쪽부터) 장지윤, 윤예슬, 나강민 명예기자. ②장인순 전 원장은 교통편이 없어 도서관에 오기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서는 택시비를 지원한다.

"시간 부자인 어린이가 부럽습니다"

Q. 어릴 때 어떤 학생이었어요?(강민)

"내가 굉장히 소심한 사람인데 질문을 참 많이 했어. 대학에서도 항상 수업을 잘 듣고 질문을 하려고 교수님 코앞에 앉았어. 학생은 언제나 질문을 준비해야 해. 선생님이 가장 무서워하는 학생이 물어보는 학생이야. 많이 알면 알수록 질문을 하게 돼."

Q. 공부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지윤)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고, 엉덩이로 하는 거야. 문제를 쉽게 풀었을 때보다, 밤새도록 고민해서 한 문제를 겨우 해결했을 때 더 행복하다고. 나 같은 바보는 남들이 한 시간 걸리는 거 열 시간씩 해. 그런데 더 재밌어. 이 도서관이 화려하진 않지만, 아이들이 오래 머물면서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어."

Q. 마지막으로 어린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예슬)

"나이 들수록 하루하루가 너무 소중해. 어린이로 돌아가면 얼마나 행복할까. 학생들이 부러워. 나보다 부자잖아. 시간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어. 돈은 잃어버리면 벌 수 있는데, 시간은 잃어버리면 못 찾아. 학생들은 매일을 소중히 여기고 꼭 일기를 썼으면 좋겠어. 그날 일어난 일을 적고, 내일은 뭘 할지를 써야 해. 다음 날 '어제 이런 생각을 했구나' 반성하고, 자기와의 약속도 지킬 줄 알아야 해."

툭하면 정전인 한국을 에너지 강국으로

미국에서 불소화학을 공부한 장 전 원장은 1979년 핵무기 개발을 위해 귀국했다. 그러나 그해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逝去)로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이후 장 전 원장은 한평생을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 발전에 헌신했다. 1970년대만 해도 한국은 정전(停電)이 일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자랑한다. 여기에는 장 전 원장과 동료의 눈물 나는 노력이 있었다. 당시 원자력 선진국은 미국·독일이었다. 이들이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과학자에게 핵심 기술을 알려줄 리는 만무했다. 장 전 원장은 학자로서의 자존심을 건드는 전략을 썼다. 독일 학자에게 “도대체 나보다 잘 아는 게 뭐냐”며 자극하자 정보를 털어놓기 시작했단다. 독일의 핵 원료 공장에서는 눈과 손으로 기술을 가져왔다. 파이프의 굵기, 각도 등 시설물을 유심히 살펴보고 호텔로 돌아와 밤새 그림을 그렸다. 장 전 원장은 “우리나라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적은 돈으로 원자력 자립(自立)을 이룬 나라”라고 자부했다. 2009년에는 아랍에미리트에 20조 원짜리 원자로를 수출했다. “그날 계약서에 적힌 사인을 보면서 밤새도록 울며 글을 썼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Copyright ⓒ 어린이조선일보 & Chosun.com